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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이야기

나이팅게일 백의의천사 크림전쟁 선서문

by wansanbul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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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이 전쟁터에 부상병들을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간호사였기에 우리에게는 나이팅게일이 "백의의 천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망치를 든 여인"이라는 소름이 돋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어째서 나이팅게일은 백의천사와 망치를 든 여인 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의미를 가진 두 가지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나이팅게일은 1820년에 영국의 명문가의 귀한 막내 딸로 태어났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어릴적부터 아가씨 소리를 들으며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나이팅게일은 커가면서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서 병들고 다친 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자신의 신앙적 사명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금처럼 깔끔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19세기 프랑스의 음악가인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18살 때 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의사가 정말 되고 싶다면 직접 병원에 가보라고 말해서 프랑스 파리 대병원을 방문했다가 쥐가 들끓었던 병원을 보고 구역질을 하며 의사를 포기하고 음악가가 되었다 합니다.

의사도 상황이 일어했으니 간호사라는 직업은 더더욱 상황이 안 좋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였는데 명문가의 귀한 막내딸이 어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가 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간호사가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니 당연히 집안은 뒤집어졌습니다.

나이팅게일의 가족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나이팅게일이 간호사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심지어 나이팅게일의 아버지는 강제적으로 나이팅게일의 혼사를 여러 번 준비했으나 나이팅게일은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뜻을 관찰하여 결국 간호사가 됐습니다.

이후에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의 영국군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간호사로서 참여하게 되는데 위인전에 나오는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모습이 바로 이 시절에 모습입니다.

당시 크림 전쟁에서는 총을 맞아 죽는 병사보다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치유하지 못해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의 병원도 위생이 엉망인 상황이었으니 전쟁이 한창 중인 상황에서 부상병들이 있는 병원은 위생이 더욱 엉망일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작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감염이 되어 사망하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고합니다.

참고로 얼마나 위생이 심각했냐면 쥐가 부상병의 머리 위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처참한 위생이 부상병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나이팅게일은 부상병들이 있는 병원의 열악한 위생을 하나씩 개선해 나갔고 덕분에 부상 병들의 사망률은 40% 대해서 2% 로 감소하는 기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의 간호사로 참여한 후 단 6개월 만에 일어난 변하였습니다. 또한 나이팅게일은 병원에 위생을 위해서 거의 쉴 시간조차 없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에도 등불을 들고 부상병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부상병들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이미지 때문에 한국에서는 나이팅게일의 별명이 "백의의 천사"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 나이팅게일의 별명은 나이팅게일이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다닌 이미지로 인해 "등불 든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크림 전쟁에 참여한 영국군들이 나이팅게일을 부르는 별명이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크림 전쟁 당시 의료 물자가 바닥이 났을 때 나이팅게일은 군에게 의료 물자를 요청했는데 군에서 의료 물자를 내주지 않자 나이팅게일은 친히 군 창고로 쳐들어가 망치로 문을 따고 의료 물자를 털어갔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군에서 의료 물자를 내주지 않을 때마다 나이팅게일이 망치로 의료 물자를 털어가는 일이 자주 있자 영국군 들은 라이팅 게이를 망치를 든 여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라이팅 게일이 의료 물자를 찾으러 군 창고로 오자 군 창고를 지키던 한 장교가 서류 통과를 못했으니 절대 못 준다고 하니까 나이팅게일이 총으로 문을 부수고 외교 물자를 챙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크림 전쟁이 끝난 후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간호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병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나이팅게일의 간호 철학은 환자가 쾌적함을 느끼는 환경에서 환자의 회복이 더 빠르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서 병실에 청결한 위생은 물론이고 전염병이 전파되지 않기 위해 환자의 침대 들간의 최소 거리를 지키며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병실에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거나 환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개인별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규칙을 병원을 설립할 때 반영한 것입니다.

이런 규칙들은 현대의 병원에서도 다수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로 인해 간호사의 지위는 물론이고 이전까지의 전근대적 병원행정이 한 단계 진일보되었습니다.

 

 


이러한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제 적십자에서는 매년 전 세계의 우수한 간호사들에게 나이팅게일상을 수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의사가 되었을 때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간호사가 되었을 때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 크린 전쟁의 나이팅게일처럼 간호 학도들은 하얀 가운을 착용하고 손에 촛불을 들면서 선서를 한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나이팅게일은 고양이한테 무한한 사랑을 펼쳤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은 평생 동안 약 60 마리의 고양이들을 돌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에 열일곱 마리의 고양이까지 돌보기도 했다 는 이야기 도 있다고 합니다.

당시 고양이는 나이팅게일이 혼자 식사를 할 때나 혼자 잠자리에 들 때 언제나 함께 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나이팅게일의 간호학 저서에는 종종 아프거나 만성적인 질병을 앓고 있을 때 고양이는 최고의 친구가 된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 선서문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I solemnly pledge myself before God and in the presence of this assembly to pass my life in purity and to practice my profession faithfully.
I will abstain from whatever is deleterious and mischievous and will not take or knowingly administer any harmful drug.
I will do all in my power to elevate standard of my profession, and will hold in confidence all personal matters committed to my keeping, and all family affairs coming to my knowledge in the practice of my calling.
With loyalty will I endeavor to aid the physician in his work and devote myself to the welfare of those committed to my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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